조선시대의 낙마

낙마로 인한 사고는 20세기 이전에는 매우 흔한 사고였지만 그 이후에는 발생이 현저하게 저하되어 스포츠의학의 영역이 아니라면 현대인 사이에서 매우 찾기 힘든 형태의 외상이 되었다. 따라서 현대의학에서 축적된 정보를 가지고 과거의 질병에 접근해가는 방식만 고집한다면 조선시대 사람의 외상 사례를 보았을때 그 원인으로 낙마를 첫번째로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조선시대 사람들 중에서도 상류계층-사대부들을 대상으로 본다면 이들은 군역 등 각종 노역에서 면제되어 있었고 생업을 위해 육체노동을 해야 할 필요도 크지 않았던 만큼 실제로 낙마가 사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연구에서 조선시대 낙마 기록을 보면 사회 최상류층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이를 막상 당한 당사자는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큰 위해를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무엇보다 낙마사고는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정밀한 관료체제를 기반으로 작동하던 조선왕국 그 자체에도 중요한 위해가 된다는 점에서 당시 국가는 출사한 관료들의 낙마상황과 추이를 항상 면밀히 파악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연구에서 밝혀진 내용은 조선시대 낙마의 발생양상을 의사학적으로 처음 확인한다는 의미를 갖지만 분석된 문헌 연구의 대상이 사회 최상류층 사람에 대한 기록에 주로 집중된 다는 점에서 조선사회 전반에서 낙마사고에 대한 포괄적이해를 갖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할 수 있다. 만약 연구의 대상을 지방의 향신층까지 확대한다면 낙마로 인한 사고의 빈도와 심각함이 보다 분명히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면 보다 다양한 계층에 관해 기술된 역사 문헌을 계속 발굴하여 분석하는 후속작업이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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